UPDATE : 2019.10.23 수 19:03
상단여백
HOME 칼럼
"음란사진이 불법으로 올라오는데 처벌도 못한다구요?"
  • 전준강 기자
  • 승인 2017.12.15 19:04
텀블러

본 기자에게는 조금의 가능성도 없는 '상상'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이 '여성'이라고 가정하고 한 뒤의 상상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전혀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허무맹랑하거나 시간 낭비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2018년 2월 26일 월요일. 오늘은 대학교 개강이었다. 날씨가 추워 정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내년 취업을 위해서 무조건 가야 했다. 

집에서 학교가 조금 떨어진 탓에, 학교를 향해 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다. 그때는 옆에 누군가 앉는 것을 싫어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학교에 도착해 도서관으로 먼저 향했다. 역시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남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 여자들도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를 보면서 수군대는 무리도 있었다. 마치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 그들은 나에게는 들리지 않게 모여서 수군거렸다. 그때 뒤에서 남자 둘이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다. "쟤지? 쟤 맞지? 사진하고 똑같다. 안 그럴 것처럼 생겼는데…"라는 말이 들렸다. 

'사진'하고 똑같다는 말은 뭐고, 안 그럴 것처럼 생겼다는 말은 또 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순간에서 빠져나가고 싶어 곧장 강의실로 갔다. 

실제 피해를 겪은 유튜버 박민정 / 박민정 페이스북

강의실에는 이미 나보다 일찍 도착한 동기들이 있었다. 어딘가 낯선 동기들의 표정은 나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 그리 친하지는 않은 여자애 한 명이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거 너 맞지?"라고 물었다. 

사진 속 얼굴은 나와 똑 닮아 있었다. 아니, 그냥 '나'였다. 그런데 그 사진 속의 나는 '옷'을 모두 홀라당 벗고 있었다. 심지어 취하고 있는 몸짓도 너무 저질스러웠고, 알지도 못하는 남성의 성기를 만지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남자와 성관계를 하는 사진이었다. 결단코 맹세하건대, 나는 사진 속의 여자가 벌인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정신을 잃고 끌려간 적도 없었고,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마약에 취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느라 남자들과 부대낄 시간조차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 사진은 합성사진이었다. 나의 얼굴만 잘라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야한 동영상과 야한 사진에 '합성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에는 이름과 나이, 대학교와 학과명 등 나를 특정하는 신상 정보가 함께 게재돼 있었다. 사진 속의 얼굴은 누가 보아도 '나'였고, 신상정보까지 똑같으니 본인 아니고서는 나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나를 절망에 빠뜨린 이 사진이 올라온 곳은 '텀블러'(tumblr)라는 사이트였다.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당장 경찰서를 향해 달려갔다. 신고하러 경찰서에 갔는데, 돌아온 대답이 더욱 절망적이었다. "해외 사이트라서 처벌이 어렵고, 여기 가입도 완전 익명으로 하는 거라 잡기도 엄청 어렵다"라는 것이었다.

합성 사진이 올라온 곳은 온갖 음란한 사진과 영상이 마구 올라오는 해외 사이트인데,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처럼 휴대폰 인증과 같은 간단한 절차도 없이 가입이 가능하다. 철저히 익명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해외' 사이트라서 처벌을 할 수가 없고, 서버 조사 요구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너무 절망적이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내가 일일이 아니라고 나를 보며 수군대는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사람들에게 '나'는 옷을 벗어 재낀 채 남성들과 놀아난 음란한 여자가 돼버렸다. 

이상의 이야기는 상상이다. 본 기자는 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없다. 또한 누군가에게 매력을 어필할 만한 얼굴도 아니기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은 이러한 걱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가 신체 일부분을 불법촬영하고, 위에 나타난 것처럼 누군가가 합성 음란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불법 행위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잘못됐다. 그런데 불법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는 공간을,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로 제재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한 사람을 정말에 빠뜨리는 사진이 마구잡이로 올라오는데도 조사가 어려운 것을 넘어 처벌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텀블러는 올해 상반기 기준 음란물 유통 등에 의한 시정 요구를 2만2458건이나 받았다. 방통위가 소셜 미디어에 시정 요구한 총 건수 3만 200건 가운데 무려 74.4%를 차지한다. 

2016년에는 한 해 동안 총 4만7480건의 시정요구를 받았다. 6개월간의 속도를 보면 올 한해 5만건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 이 정도로 문제가 발생하는 사이트지만, 해외 사업자이기 때문에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지난해 8월 방통위는 텀블러 측에 불법 콘텐츠를 막기 위해 협력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텀블러 측은 거부했다. 국내법을 적용받는 것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다.

피해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은 최근 여성의 나체 사진과 '성폭행 모의'가 담긴 게시글에 대한 신고를 받았다. 글쓴이는 자신의 동생이라는 여성 사진과 함께 학교 이름, 학년, 이름을 적었다. 학번이 아닌 학년을 적은 것을 보면 미성년자로 추정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이 글은 댓글이 1만개 이상 달리고, 공유는 2천건이 넘었다. 좋아요 클릭 수도 1만개 가까이 됐다. 보통 1천명 중 한 명이 댓글을 단다는 것을 고려하면 잠재적으로 해당 게시물을 본 사람은 100만명이 넘었을 수도 있다.

이같은 피해 사례가 급증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카테고리에는 "해외 사이트를 기반으로 한 무분별한 일반인 모욕 사진의 유포를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에 참여한 이는 15일 저녁 6시 30분 기준 8만9천9백명을 넘어섰다.

인기 유튜버도 합성 사진으로 인해 곤욕을 치렀고, 청원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녀는 "별걸 가지고 청원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의 여동생이나 소중한 여자친구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라며 청원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기자도 이러한 청원을 통해서라도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해외 사이트라는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태에 변화가 오기를 바란다. 

불법 촬영과 합성 음란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것들이 마구잡이로 올라오는 곳을 제재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전준강 기자  orionnada@mediassul.com

<저작권자 © 미디어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준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발편집주의보' 울리며 유튜브 시작한 모델이소라, 촬영도 편집도 스스로해...
'발편집주의보' 울리며 유튜브 시작한 모델이소라, 촬영도 편집도 스스로해...
데이트 2번만에 청혼해 국제결혼한 ‘미니멀라이프’ 유튜버
데이트 2번만에 청혼해 국제결혼한 ‘미니멀라이프’ 유튜버
여백
Back to Top